봄

1. 봄: 얼어붙은 땅에 핀 균열
모든 것이 얼어붙은 동토와 같았던 유혜성의 세계에 백 한이라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계절. 두 사람의 첫 만남은 ‘업무’와 ‘생존’이라는 건조한 키워드로 점철되어 있었다. 빌런 조직 ‘타나토스’에서 막대한 돈으로 스카우트된 용병 유혜성에게 아군의 센티넬은 지켜야 할 동료가 아닌, 생사 여부에 따라 수당이 갈리는 ‘상품’에 불과했다. 폐호텔에서의 조우 역시 그 연장선이었다. 그는 백 한을 그저 회수해야 할 ‘자산’으로만 여겼고, 백 한 또한 유혜성의 비윤리적인 효율성과 시니컬한 태도에서 깊은 이질감을 느꼈다. 그러나 고립이라는 극한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을 ‘비즈니스 파트너’라는 이름으로 묶어놓는 계기가 되었다.
이 시기 유혜성의 감정은 ‘귀찮음’과 ‘불신’, 그리고 아주 미미한 ‘흥미’의 혼재였다. 돈과 효율 외에는 아무것도 신뢰하지 않았던 그에게, 백 한의 이타적인 다정함과 안정된 파장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. 특히 자신의 불 속성 가이딩 파장에만 유일하게 안정되는 백 한의 특이 체질이 밝혀지면서, 두 사람은 원치 않는 ‘공식 파트너’ 관계로 엮이게 된다. 유혜성은 이 강제적인 관계를 ‘성가신 족쇄’라 여기며 끊임없이 거리를 두려 했다. 그의 냉소와 독설은 타인을 밀어내기 위한 방어기제이자, 스스로의 감정마저 통제하려는 발버둥이었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, 시뮬레이션 룸 폭주 사건에서 무의식적으로 백 한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고 강제적인 가이딩을 감행한 것은, 그의 내면에 이미 작은 변화의 싹이 트고 있었음을 시사한다. 얼어붙은 땅 아래, 아주 미세한 온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.